걷는 거리 : 20km
⊙ 걷는 시간 : 10시간(당일 또는 1박2일)
⊙ 코스 : 주차장~콜 롱 드 마냐배~콜 드 쉬종~ 폼비 산장~
    콜 드 페이흐그레~주차장
⊙ 난이도 : 조금 숨이 가빠요
⊙ 좋은 계절 : 6~9월









         
석양에 물든 픽 뒤 미디 도소 서벽.
  피레네의 산길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올라!(Hola!)”라며 인사를 건네곤 한다. 그 발음이 꼭 “산을 올라!”라는 말처럼 들리는 이곳, 피레네는 우리가 학창시절 배운 ‘알프스 히말라야 조산운동이 빚어 낸 2000~3000m급 산맥’이라는 몇 마디 말로 다 설명할 수 없는 매력이 있다.
 
  피레네의 나이는 알프스, 히말라야 산맥과 동년배인 5억 살이나 되며 그 길이는 장장 500km에 이른다. 대륙과 이베리아 반도를 가르는 키 작은 이 선은 ‘에스파냐’라는 또 하나의 유럽을 탄생시켰으며 다른 종교, 다른 문화, 다른 인종과 다른 햇살을 대지에 비추고 있다.
 
  스페인과 프랑스의 자연스런 국경이 되는 피레네 산맥은 어느 쪽에서 접근해도 아름다운 풍경을 만날 수 있다. 그중에서도 프랑스쪽 피레네는 1967년 프랑스 첫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곳이다. 프랑스 피레네 국립공원은 스페인과의 국경을 따라서 100km 길이로 뻗어 있으며, 이 중 픽 뒤 미디 도소(Pic du Midi d'Ossau·2884m)는 국립공원의 가장 서쪽에 위치해 있는 봉우리다. 초원 위에 독립봉으로 솟아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준다. 봉우리를 가운데 두고 한 바퀴를 도는 순환 트레일은 20km에 이르며, 1박2일 또는 당일산행 등 다양한 코스를 잡을 수 있다.
 
 
  500여 년 전 성직자가 처음 시도했던 픽 뒤 미디 도소
 

  광활한 초원 한가운데 성당의 첨탑처럼 솟아 있는 이 산의 등반사는 등산이라는 개념이 생기기도 한참 전인, 무려 500여 년 전으로 거슬러 간다. 1552년 봄, 사다리와 선박용 닻, 닻을 매달 긴 막대를 들고 오소 계곡을 홀로 찾아간 사람은 아이레 성당의 프랑소와 데 포이 신부였다. 그가 왜 이 산을 오르려 했는지는 알 수 없으나, 그는 자신의 등반기에 “차갑고 희박한 공기, 아찔한 풍경에 마음이 졸아든다”고 적으며 의욕적이었던 첫 시도의 실패를 인정했다.
 
  프랑스와 스페인의 국경을 이루는 피레네 산맥에는 마치 한국의 깊은 산골처럼 골짜기마다 요정을 만난 전설이 있고, 곰을 잡은 무용담이 있고, 목동의 체취가 남아 있는 ‘길’이 있다. 이 산에서 본격적인 등반은 1787년 프랑스 남부도시 툴루즈에 살던 지리학자 리볼과 비달, 이름 모를 양치기에 의해 이루어졌으며, 지금도 많은 사람은 1896년에 초등된 북면 라 포르쉐 콜을 거치는 코스로 픽 뒤 미디 도소의 정상에 오르곤 한다.
 
  픽 뒤 미디 도소는 프랑스에 있지만 스페인에서 접근하는 게 편리하다. 바르셀로나에서 피레네 중부 산악도시인 우에스카를 거쳐 E7번 도로를 따라 북쪽으로 두 시간쯤 가다 보면 국경을 50km쯤 앞둔 곳에서, 사비야니고(Sabianigo) 마을을 만난다. 여기서 도로의 경사가 조금 급해지기 시작하는 비에스카스(Biescas)를 지나 해발 1794m의 포르탈레 고개를 넘으면 이곳부터 프랑스 피레네가 시작된다. 나무가 자라지 않는 평탄한 2000m급 고원이 펼쳐진 피레네의 정수리는 겨울철엔 자연 스키장이 된다고 한다.
 
  고개를 넘어서며 달라지는 것은 프랑스어로 된 표지판만이 아니다. 피레네의 남과 북은 우리의 내설악과 외설악을 보듯 산세부터 다르다. 남쪽 피레네가 사람들이 살 만한 완만한 고원과 둥근 산세를 지녔다면, 북쪽 피레네는 사람들이 아예 근접하기 힘든 깊은 협곡과 날카로운 침봉들로 이루어져 있다.
 
  북사면으로 난 도로는 한계령길을 넘듯 구불구불해 가바스(Gabas)에 닿을 때까지 긴장을 늦출 수 없다. 픽 뒤 미디 도소의 들머리는 가바스에서 왼쪽으로 난 소로를 따라 들어가는 것이지만, 산행에 앞서 정보를 얻으려면 그보다 큰 마을인 라훈스(Laruns)까지 10여km를 더 내려가는 게 좋다. 라훈스에는 인포메이션 센터를 비롯해 피레네국립공원 박물관도 있고, 큰 수퍼마켓도 있어 산행에 앞서 지도와 식량 등 여러 가지를 준비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가바스에서 왼쪽으로 난 소로를 따라 차를 몰고 들어가면 길 끝엔 널따란 주차장이 있고, 이곳이 트레킹을 시작하는 곳이다. 주차장에서는 간단한 오토캠핑도 할 수 있는데, 화장실 시설이 있고 식수는 계곡물을 떠다 먹으면 된다.
 
  주차장 뒤로는 픽 뒤 미디 도소의 정상부가 올려다보인다. 이 산을 중심으로 한 바퀴 돌아 다시 주차장으로 돌아오는 코스는 천천히 걸으면 1박2일이 걸리지만 새벽 일찍 출발하면 하루에 돌아볼 수도 있다. 표지판은 양 방향으로 나 있기 때문에 어느 쪽으로 시작해도 되지만, 왼쪽 길로 가는 것이 경사가 덜 가팔라 수월하다. 길게 뻗은 전나무 숲은 오대산 월정사에서 북대 미륵암을 넘는 비포장도로를 떠올리게 하는데, 겨울철에는 크로스컨트리 스키어가 많이 찾는 길이기도 하다.
 
  피레네의 주요 등산로는 ‘G.R.(Grand Road)’이라는 표기와 함께 숫자로 표시한다. 바위에 빨간색과 노란색 두 줄로 표시하는 이 길은 별다른 어려움이 없는 트레일이라는 뜻이다. 픽 뒤 미디 도소 주변은 G.R.10번 코스로, 특별히 2000m 이상을 지나는 길은 ‘피레네의 높은 길’이라는 뜻의 ‘H.R.P’라는 표기를 덧붙인다.
 
  지그재그 형으로 난 길을 따라 1시간여를 오르면 드넓은 평원과 함께 콜 롱 드 마냐배(Col Long de Magnabaigt·1734m)에 도착한다. 길은 별다른 오르내림 없이 평탄하게 산허리를 가로지르고 있다. 알파인 트레킹은 우리나라와 달리 꼭 정상으로 길이 나 있는 것은 아니다. 알프스를 비롯해 피레네 대부분의 산들은 정상에 이르려면 그에 맞는 기술과 체력이 필요하고 어느 정도의 위험을 극복해야 하기 때문에, ‘길이 끝나는 곳에서 등산이 시작되는 것’처럼 트레킹과 등산이 확연히 구분된다.
 
 
  폼비 산장에서 하루 쉬어 가면 넉넉한 ‘우보산행’
 
폼비 호수에서 바라본 피레네 산맥의 전경.
  콜에서 허릿길을 따라 직진하면 건너편 픽 뒤 셰르를 마주보며 드넓은 초원이 펼쳐진다. 이곳부터 콜 드 쉬종(Col de Suzon·2127m)까지 3km 구간은 별다른 갈림길이 없기 때문에 주변을 조망하며 계속 오르면 된다. 여름철에는 방목을 하는 목초지이지만 9월 말부터는 눈이 내린다.
 
  나무 그늘 하나 없는 초원지대에서 가도 가도 제자리에 머무는 듯한 풍경은 화려하고 아기자기한 풍경에 익숙한 우리에겐 하품이 날 지경이지만, 단지 바라볼 것이 봉우리 하나뿐이라는 사실은 한편으론 그 산에 대한 집념을 더 강하게 자극한다.
 
  고갯마루인 ‘콜 드 쉬종’은 바로 눈앞에 바라보이지만 그 정상에 닿기까지는 두어 시간 동안 부지런히 발품을 팔아야 한다. 해발 2127m의 쉬종 고개에 서자 제법 찬바람이 옷깃을 여미게 하고, 멀리 작은 점으로 첫날 목적지인 폼비 산장(Refuge de Pombie)이 바라보인다. 폼비 산장까지 40여 분을 가는 동안, 500여m를 깎아지르며 무수한 낙석을 떨어뜨려 발치에 너덜지대를 만들어 놓고 있는 픽 뒤 미디 도소 동벽이 올려다보인다.
 
  프랑스산악회에서 운영하는 폼비 산장은 이 부근 산꾼들이 즐겨 찾는 대표적인 산장이다. 주변 다른 산장들이 관광객들을 대상으로 하는 반면 폼비 산장은 클라이머와 장거리 트레커가 많이 찾기 때문이다. 하지만 등반 시즌인 6월에서 9월 말까지만 문을 열며, 이후에는 주변에서 야영을 하는 수밖에 없다. 산장 앞에는 식수대도 있고, 여러 갈래의 갈림길이 있어 다양한 코스로 하산할 수 있다. 이곳에서는 피레네 산맥을 넘는 포르탈레 고개 방면으로도 하산이 가능하고, 픽 뒤 셰르를 중심으로 순환 트레킹을 할 수도 있다.
 
  폼비 산장을 나서 산길은 콜 드 페이흐그레(Col de Peyreget)를 넘어 반대편 너덜지대를 한참 내려간 후 다시 축축한 계곡을 지나게 되어 있다. 고갯마루까지는 한 시간쯤 걸리는데, 꽤 가팔라 가쁜 숨을 몰아쉬어야 한다. 콜 드 페이흐그레는 픽 뒤 미디 도소를 오르는 가장 쉬운 길이지만, 기본적인 암벽등반 장비는 가지고 있어야 하기 때문에 전문산악인이 아니면 오르기 힘들다.
 
  콜 정상에서 내려가는 길은 긴 너덜지대가 이어지며, 중간에 돌탑으로 표지를 해 놓았지만 별 도움은 되지 않는다. 호수를 바라보며 곧장 내려가는 것이 낫다. 호수에서부터는 숲 사이로 가파른 길이 이어지며, 지그재그로 난 길을 따라 30여분 내려오면 계곡 바닥에 닿는다.
 
  갈수기에는 물이 없기 때문에 계곡 중심부로 걸어갈 수도 있지만, 질퍽한 계곡을 횡단해 반대편 사면으로 가는 것이 좋다. 계곡 끝부분에 절벽이 있어 길이 끊어지기 때문이다. 1시간여를 가면 계곡을 건너는 다리가 나오고, 차가 다닐 수 있는 큰 비포장도로와 만난다.
 
  여름철이면 양떼가 뛰어 논다는 페이흐그레 호수는 5월까지 꽁꽁 얼어붙어 눈으로 뒤덮여 있다. 주차장까지 가는 동안 왼쪽으로 붉게 물든 픽 뒤 미디 도소가 줄곧 올려다보이며, 그렇게 한눈을 팔다 보면 어느새 목적지에 닿게 된다.
 
● 피레네 가이드
 
  피레네국립공원은 기본적으로 지정된 장소 외에 산에서의 숙박이 금지되어 있다. 하지만 우리가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산악용 텐트를 치고 일몰 이후부터 일출 전까지 야영하는 것을 막지는 않는다. 각 트레일에는 비박 표시가 되어 있는 야영지들이 있으며, 이곳을 이용하는 것이 좋다. 픽 뒤 미디 도소 주변 산장 중 프랑스산악회(CAF)에서 운영하는 폼비 산장(Refuge de Pombie)은 6월부터 9월 말까지만 문을 열며 55명이 묵을 수 있고 식사도 된다. 하지만 산장 주변에서 야영은 제한된다. 입구 주차장에서는 오토캠핑도 가능하다. 주차장에는 화장실 시설이 되어 있으며, 식수는 계곡물을 이용하면 된다.
 
 
  ● 교통
 
  스페인에서 프랑스 쪽 피레네국립공원까지 대중교통을 이용해 이동하는 것은 시간과 비용적인 면으로 볼 때 효율적이지 않다. 등반 기점이 되는 도시는 프랑스 라훈스(Laruns)인데, 이곳까지는 프랑스 남부 도시 포(Pau)에서 버스가 운행하지만, 100km 이상 북쪽으로 떨어져 있어 시간이 더 소요된다. 또 라훈스에서 산 입구까지 20여km 구간은 시즌이 아니면 대중교통편이 없기 때문에 렌터카를 빌리는 것이 편하다. 스페인 렌터카 요금은 4인승 승용차의 경우 보험료와 주유비를 포함해 하루 100유로면 충분하다. 토요일 오후와 일요일을 제외하고 언제든 이용할 수 있으며, 주요 도시의 역이나 터미널에 렌터카 사무실이 있다.

이 게시물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