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보지 않을 때, 그는 무엇을 했는가?


 

나의 고통이 계속하며 상처가 중하여 낫지 아니함은 어찌 됨이니이까

주께서는 내게 대하여 물이 말라서 속이는 시내 같으시리이까

(렘15:18)


 


미켈란젤로의 '탄식하는 예레미야'


 


렘브란트가 그린 예레미야 선지자


 


 

'눈물의 선지자'라는 별명을 가진 예레미야!

백성들의 귀를 거슬리는 말씀으로 모진 왕따를 당해야만 했던 그.

아무도 그의 말에 귀를 귀울여주지 않았음은 물론이고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했다는 이유로 매질을 당하고

옥에 갇히는 설움을 당했던 그.


 

모든 사람들이 그의 존재 자체를 잊고자 할 때,

성전의 관리들과 부딪히고 종교지도자들로부터 핍박을 당할 때,

세상의 주목을 받지 못하고 언론의 조명을 받지 못할 때..

과연 그는 무엇을 했을까?


 

성경에서 발견한 것은 바로 그의 기도하는 모습이다.

그는 세상의 외면을 당할 때 오히려 뒤로 물러나 기도했다.

그것은 그의 내밀한 삶의 비밀이기도 했다.


 

그는 하나님과의 뜨거운 관계를 잃어버리지 않았다.

그가 느끼는 분노, 설움, 억울함, 누명 등등..

그 모든 것을 거짓없이 하나님 앞에 탄식함으로 아뢰었다.

그것은 '관계'가 만들어 준 치유의 탄식이다.


 

"기도는 우리가 하나님을 살아있는 인격으로 여기고 그분께 나아가는 행위로써,

하나님은 우리가 대화의 소재로 삼는 사물이 아니고

우리가 직접 말씀을 아뢰는 인격적 대상이다" - 유진 피터슨 -


 

이것이 바로 우리가 지향해야 하는 기도생활이며 '관계'다.

그러나 우리는 종종 '하나님에 대해서 말하는 것'으로

자신의 거룩함을 드러내고자 할 때가 많다.


 

리지외의 테레사(Therese of Lisieux)는 이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하나님에 관해 이야기하는 것보다 하나님께 이야기하는 것이 언제나 더 낫다고 느꼈다.

그러한 종교적인 대화들, 거기에는 언제나 자기를 인정하는 느낌이 있기 마련이다."
 


 

예레미야는 두려웠다.

자신의 생명을 해하려는 음모와 매맞음, 그리고 감금까지..

그는 이 모든 고통을 기도에 담고 있다.


 

주님께서 진노를 오래 참으시다가 그만,

저를 잡혀 죽게 하시는 일은 없게 하여 주십시오.

제가 주님 때문에 이렇게 수모를 당하는 줄을,

주께서 알아주십시오.


 

그리고 자신이 느끼는 외로움도 기도에 담아 호소한다.


 

주의 말씀은 저에게 기쁨이 되었고 제 마음에 즐거움이 되었습니다

저는 웃으며 떠들어대는 사람들과 함께 어울려 즐거워하지도 않았습니다

주님께서 채우신 분노를 가득 안은 채로

주의 손에 붙들려 외롭게 앉아 있습니다.


 

그가 받은 상처도 빠트리지 않고 기도에 담는다.

그것은 그 자신이 골수에 사무치도록 느낀 배척감이기도 했다.


 

어찌하여 저의 고통은 그치지 않습니까?

어찌하여 저의 상처는 낫지 않습니까?


 

마침내 그는 분노를 터뜨린다.


 

주께서는 내게 대하여 물이 말라서 속이는 시내같으리이까?

당신은 흐르다가도 마르고 마르다가도 흐르는

여름철의 시냇물처럼 도무지 믿을 수 없는 분이 되셨습니다.


 

이것이 예레미야의 기도하는 모습이다.

두려움, 외로움, 상처, 분노로 둘러싸인 선지자,

난공불락의 예레미야가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드러내놓고 있다.


 

이런 선지자의 모습은 놀랍기도 하고 의외이기도 하지만

이 시대를 사는 우리들에게는 적지아니 위안이 된다.

우리는 얼마나 기도를 잘못 오해하고 있는지..

그것은 때때로 얼마나 가증스러운 것인지..

그러나 진실된 기도는 바로 이런 것임을 배운다.


 

"내가 너를 튼튼한 놋쇠 성벽으로 만들어서

이 백성과 맞서게 하겠다"


 

하나님의 응답도 재미있다.

예레미야가 당하는 고통이나 상처, 외로움에 대해서

하나님은 전혀 언급이 없으시다.

대신 그로 하여금 튼튼한 놋쇠 성벽이 되게 하시겠다고...


 

우리는 어떤 대답을 기대하며 기도하는가?

현재의 고통에서 빨리 벗어나기를,

모든 상처가 깨끗이 사라지기를,

뼈속까지 사무치는 외로움이 즉시 해결되기를..

그러나 말씀 속에서 발견하는 것은,

그 모든 것은 '튼튼한 놋쇠 성벽'이 되기 위한 과정이라는 사실이다.


 

그렇다.

기도는 현실도피를 위한 것이 아니다.

내게 주어진 현실 가운데서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는 것이 기도다.


 

세상에서 왕따를 당하고 있는가?

서럽고 억울한 일로 좌절하고 있는가?

가슴에 멍든 상처자국으로 한숨이 가실 날이 없는가?

그렇다면 세상을 향해 입을 열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입을 열어야 한다.


 

세상을 향해 입을 열면 그것은 부메랑이 되어

더 큰 분노와 원망, 상처를 가져오게 되지만

하나님을 향해 입을 열면 힘과 용기와 능력이 되어 되돌아오기 때문이다.


 

그들이 너에게 맞서서 덤벼들겠지만 너를 이기지는 못할 것이다.

내가 반드시 너와 함께 있어서 너를 도와주고

너를 구원하여 주겠다. 나 주의 말이다.

내가 너를 악인들의 손에서도 건져내고

잔악한 사람들의 손에서도 구하여 내겠다.


 

<예레미야 15장/ 쉬운성경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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